(사진출처: 나남뉴스)
최홍만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거대한 체격의 전 씨름 선수이자 이종격투기 선수입니다. 압도적인 키와 힘으로 씨름 천하장사를 차지했으며, 이후 격투기 무대에서 ‘테크노 골리앗’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그의 경기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이야기와 근황까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했습니다.
최홍만 거인의 탄생과 씨름 선수 시절
최홍만은 1980년 10월 30일, 제주도 한림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부터 비범한 체격으로 주목받았으며, 중학교 시절 부산 동아대 송미현 감독에게 발탁되어 씨름 선수로 입문했습니다. 218cm, 164kg에 달하는 신체 조건은 대한민국 씨름계에서도 단연 독보적이었고, ‘거인’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존재였습니다.
그는 동아대학교에서 체육학을 전공하며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까지 취득할 정도로 학업에도 힘썼습니다. 씨름 선수 시절에는 천하장사와 백두장사 타이틀을 여러 차례 획득했으며, 국내 씨름계에서 최정상급 스타로 활약했습니다.
씨름에서의 성공은 그를 격투기 무대로 이끌었습니다. 씨름 특유의 힘과 밸런스를 바탕으로 킥복싱과 종합격투기(MMA) 쪽으로 전향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최홍만의 격투기 경력과 ‘테크노 골리앗’의 전성기
최홍만은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종합격투기 선수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05년 K-1 월드 그랑프리 서울 대회에서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서도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의 경기 스타일은 거대한 신체를 활용한 강력한 타격과 압도적인 존재감이 특징이었으며, ‘테크노 골리앗’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경기로는 2007년 K-1 월드 그랑프리 서울 파이널 16전에서 마이티 모와 대결, 2009년 드림 9에서 호세 칸세코와 맞붙은 경기가 있습니다. 최홍만은 입식 타격과 종합격투기 경기를 합쳐 총 23전 14승 9패라는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격투기 무대에서는 압도적인 키와 체중 외에도 뛰어난 운동신경과 전략을 선보였으나, 상대 선수들의 빠른 움직임과 기술 앞에서 고전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존재 자체가 경기에 큰 임팩트를 남겼습니다.
근황과 회복 가능성, 여전히 뜨거운 논쟁
결혼과 개인사
최홍만은 대중적으로 결혼 여부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으나, 미디어와 방송을 통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일부 공개한 바 있습니다. 큰 키와 특이한 외모 때문에 주목받는 만큼 사생활에 대해 신중한 편이며, 일부 보도에 따르면 연애와 결혼에 대한 본인의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재산과 경제 생활
최홍만은 씨름 선수 출신으로, 전성기에는 이종격투기(K-1 등) 선수로 활동하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성기 연봉은 약 20억 원에 달했으며, 경기 수당과 광고(CF) 출연료 등을 합하면 최소 50억 원에서 100억 원에 이르는 수입을 올렸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특히 K-1 시절 밥샙과의 경기로 큰 주목을 받으며 광고 출연이 많아졌고, 이를 통해 큰 돈을 벌었습니다.
한때는 외제 승용차, 고가의 명품 시계 등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후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등 경제적 문제와 사기 혐의가 불거져 법적 분쟁을 겪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2013년과 2014년에 각각 1억 원, 2,500만 원을 빌린 뒤 갚지 않아 법원 판결로 지급 명령을 받았습니다. 추가로 사기 혐의로 검찰 송치된 사실도 있고, 재산 대부분을 탕진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최근 근황
최근 최홍만은 제주도 산속에서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6년 넘게 대인기피증과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2020년대 들어 개인 SNS 개설과 유튜브 출연을 통해 팬들과 소통을 시작했고, 운동과 건강 관리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특히 ‘키 논란’에 대해 직접 해명하며 자신의 신장을 “2m 16.5cm”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과거 뇌종양 수술과 건강상의 문제도 있었지만, 꾸준한 운동과 관리를 통해 현재까지 건강을 유지 중입니다.
방송에서는 유쾌하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으며,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테크노 골리앗’이라는 별명으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습니다.